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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관의 변천- 프톨레마이오스에서 뉴턴까지

account 2009. 1. 1. 22:01

우주관의 변천- 프톨레마이오스에서 뉴턴까지

1. 개요

백여 년에 걸친 여러 명의 유명한 과학자-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티코 브라헤, 요한 케플러, 아이작 뉴턴-들의 천체의 운동에 대한 관측으로부터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된다.

 

2.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체계 모델로서, 9세기 경에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알마게스트》가 발견된 이후 12세기가 되서야 서양으로 도입되게 된 우주 모델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역행 현상을 주전원을 도입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수성과 금성의 주전원 중심이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상에 있게 함으로써 수성과 금성의 최대이각을 설명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천동설의 완결판으로서, 중세에 아라비아를 거쳐서 유럽에 전파되어 그리스도교의 교리로서 공인받았다. 이 체계는 15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타나기까지 천문학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3. 코페르니쿠스

150년경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제안되었던 천동설은 중세까지 거의 1400여 년간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존속되었다.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 중에 금성의 위상변화-금성이 보름달이나 보름달에 가까운 모양으로 보이는 현상-가 있는 데 천동설을 지지했던 학자들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계속 천동설을 옹호하다보니 학설이 계속 복잡해지는 문제점이 생겼다.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출판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태양중심설인 지동설을 제창하였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하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기존의 천동설 모델로는 점차 천체의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또한 종교에서도 부활절의 시기가 점차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당시 교황청은 달력의 수치 오차 개선을 위하여 여러 천문학자를 고용하여 잘 맞는 새 달력 제작에 나서게 되는데 코페르니쿠스도 여기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이 오차 수정을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구가 돈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달력 오차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기를 꺼려했는데, 자신이 성직자라는 입장과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이론이 이단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임종 직전까지 책의 출판을 보류했었고, 책의 견본쇄는 그가 임종을 하던 1543년 5월 24일에 그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였던 오지안더는 교리에 위배되어 박해를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책에 '이 지동설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서문을 붙였다. 즉, 코페르니쿠스는, 어떤 증명을 위해서나, 자신이 직접 관측한 사실을 토대로 지동설을 제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천동설에서 나타나는 천체운동의 복잡성을 간결화시키기 위하여 지동설을 제창하였다고 볼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으로부터 가까운 순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의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각 행성들은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태양주위를 원운동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이 비록 그 때까지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관측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런 관측 자료는 덴마크의 티코 브라헤에 의해 제공되었는데, 그의 제자인 요한 케플러는 이 자료를 이용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에 관하여 세 가지 법칙을 만들었다.

 

4. 티코 브라헤

1572년 카시오페이아자리에 나타난 새로운 별(초신성)에 대하여 자세한 광도관측을 하여 일약 유명해진 티코 브라헤(덴마크, 1546-1601) 는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혜성이 지구 대기의 현상이 아니라 천체임을 입증하고, 화성의 운동을 관측하여 화성이 충의 위치에 놓일 때는 태양보다 지구에 더 가깝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아주 좋은 연구 환경에서 1567년부터 1597년까지 별들의 움직임을 그 당시로서는 아주 정확하게 측정하였다.

티코 브라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대하여 ‘정말 그럴까’라는 호기심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 그는 지구가 특정 궤도를 갖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구공전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항성의 연주시차를 제시하고 실제로 측정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장비가 부족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정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다만 지구 주위를 달과 태양이 공전하고, 행성은 다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신우주설(新宇宙說)을 제창하였으나 이를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가 행한 관측의 정밀도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가장 훌륭한 것이었으며, 그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는 제자이자 조수인 케플러에게 넘겨져, 케플러가 후에 뉴턴에게 많은 영향을 준 행성운동의 세 법칙을 확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5. 케플러

케플러가 튀빙겐 대학에서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할 때 스승인 미카엘 메스틀린에게서 처음으로 지동설을 배웠고, 그때부터 지동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체계를 증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우주의 조화를 회복시켰다는 이유만으로도 케플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케플러는 속도가 줄어드는 순서에 따라 행성들을 배열했는데, 약 1백 일마다 궤도를 한 바퀴씩 도는 수성이 맨 앞을 차지하고, 주기가 약 30년인 토성이 배열의 마지막을 차지했다. 케플러 역시 전적인 태양 숭배자였다. 그는 추한 지구보다는 오히려 우주의 중심에 태양이 자리하는 것이 훨씬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태양이 중심이 되는 우주와 삼위일체 사이에는 어떤 신비스런 조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느님 자리에는 태양, 아들 예수 자리에는 천구, 그리고 성신(聖神)의 자리에는 일중의 수증기 같은 것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주에는 왜 행성이 여섯 개만 존재하는가? 왜 그 행성들은 이 궤도를 따르고, 다른 것들은 따르지 않는가? 케플러는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이 계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창조자는 수학자가 우주를 만들게 될 것이라 구상했고, 그래서 모든 궤도는 반드시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케플러는 자신의 연구를 완성하지 못하고 아우트리슈에 있는 그라츠 대학에서 수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이 후 케플러는 당시 천체 관측의 최고 권위자인 티코 브라헤에게 자신과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했고, 티코 브라헤는 이를 받아들였다. 코페르니쿠스와 의견이 다르던 티코 브라헤는 고정된 지구 주위를 운동하는 태양 주위를 행성들이 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티코 브라헤는 화성의 운동을 세심하게 연구하여, 그 당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던 자신의 관측 자료를 이용해서 그 체계의 논리적 타당성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학 재능이 뛰어난 케플러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죽고 난 후 티코 브라헤가 30여 년에 걸쳐 얻은 관측 자료를 모두 넘겨받아,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8년이 지난 1609년, 그는 《신(新)천문학》이란 책에서 케플러 법칙이라고 알려진 세 개의 법칙 중 두 개를 발표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원을 그리며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케플러는 자료의 해석을 통하여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으로부터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을 그리면서 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제1법칙인 타원궤도의 법칙). 또 태양과의 거리가 변하면서 그 거리가 멀수록 지구의 속력이 점점 느려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제2법칙인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즉, 태양까지 거리가 멀어질수록 지구의 공전속도는 느려지고, 반대로 태양까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빨라진다. 이로써 불규칙한 계절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즉, 지구는 겨울에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고 여름에 가장 멀리 있기 때문에 지구의 공전 속도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빠르다. 그 결과 겨울이 여름보다 짧은 것이다. 이로써 플라톤의 세 가지 계율에 갇혀 있던 빗장이 열렸고,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든 체계도 밝혀졌다.

그리고 행성의 속도와 궤도의 크기 사이에는 수학적인 관련성이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즉, 행성의 공전 주기와 궤도 장반경의 관계를 조사하여 공전 주기의 제곱이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도 알아냈다(케플러의 제 3법칙인 조화의 법칙). 이 세 가지 결과를 오늘날 케플러의 법칙이라고 한다.

1618년 케플러는《우주의 조화》를 출판하고 기쁨에 넘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한 거룩한 곳을 만들기 위해, 황금 꽃병처럼 찬란한 이집트인들의 학문을 훔쳤다. (중략) 이것이 내가 주사위를 던져, 나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혹은 후세 사람들을 위해 책을 쓴 이유이다. 이 책은 나와는 상관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1백 년 후의 독자를 기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은 자신을 증거하는 자를 위해 6천 년을 족히 기다리지 않았는가."

 

6. 갈릴레이

1609년, 이탈리아 파도바의 기사이자 수학자인 갈릴레이는 자신이 공들여 개량한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했다. 그 결과 그는 목성이 네 개의 위성을 거느린다는 중요한 사실과,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1610년, 금성이 보름달에 가까운 위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갈릴레이는 1632년 출간된 그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대우주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행성이 초승달 형태로만 나타나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금성이 보름달에 가까운 위상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케플러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는 그는 행성들의 공전궤도가 타원이라는 케플러의 견해보다는 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믿었고, 특히 목성은 자신의 둘레를 원운동하는 4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태양 주위를 원운동한다고 보았다.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

1616년 5월 5일의 교령이 나온 며칠 후 로마 교황은 그 교령 안에 전혀 이름이 언급된 바 없는 갈릴레이를 접견했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하고 보완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로마에 잘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로마 교황은 그 일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갈릴레이가 그것을 절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바라지 않던 바를 갈릴레이는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증명도 하지 않은 채 주장해 버렸다. 1633년의 재판은 그 때문에 열렸던 것이다. 그때의 재판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갈릴레이는 공정하고도 적절한 처우를 받았는데, 종종 인용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기록을 보아도 분명하지만, 갈릴레이는 애당초 압력을 받기 전에 먼저 주장을 철회했다. 갈릴레이가 유죄가 된 것은 불복종이라는 죄목에 따른 것이지 이단이라는 죄목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갈릴레이는 앞으로 태양 중심의 우주론을 우주의 현실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금지당하기는 했으나, 천문학적, 수학적 작업 가설로 주장, 논의, 부연하는 것까지 금지당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연구를 더 진척시킬 수 있는 길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열려 있었다고 교회사가인 발터 브란트뮐러는 쓰고 있다('갈릴레이와 교회. 오류의 권리', 레겐스부르크, 1982). 갈릴레이가 재판 기간 중에 감옥에 있었고 고문을 받았다는 따위의 말은 다 후세에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확실히 갈릴레이는 재판받는 동안 이단 심문소의 수인 처지였으나 독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법정은 갈릴레이에게 형식적인 금고형을 선고했지만 갈릴레이는 실제로 감옥에 들어갈 필요 없이 재판이 끝나자마자 로마를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만년의 몇 년 동안은 피렌체 근교에 살면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곳에서 집필한 최후의 저작이 '두 개의 과학에 관한 대화'이다.

 

7. 결

아이작 뉴턴(1642-1727)은 경험적 사실에 바탕을 둔 케플러의 법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1687년에 발표하면서 치열하게 전개되던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과학자들은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용하여 우리 주위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운동과 현상, 나아가서는 우주에 있는 거대한 은하들의 구조와 운동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8. 생각해 볼 문제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는 과정을 통하여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출저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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